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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유언 따라 日 대신 태극마크...'독립투사 후손' 허미미 값진 銀 본문
할머니 유언 따라 日 대신 태극마크...'독립투사 후손' 허미미 값진 銀
일본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에 온 ‘독립투사 후손’ 허미미(22)가 귀중한 은메달을 따냈다.
2016 리우 올림픽에서 정보경이 48kg급에서 은메달을 따낸 한국 여자 유도는 허미미가 은메달을 확보하며 8년 만에 최고 성적을 기록하게 됐다. 한국 여자 유도는 2020 도쿄 올림픽에선 노메달에 그친 바 있다.
세계랭킹 3위 허미미는 29일 프랑스 파리 샹드마르스 경기장에서 열린 대회 여자 유도 57㎏급 결승전에서 랭킹 1위 크리스타 데구치에 반칙패를 당했다. 일본계 캐나다 선수인 데구치는 세계선수권 2회 우승에 빛나는 스타. 허미미는 지난 5월 세계선수권 결승에서 데구치를 꺾고 우승한 바 있었지만, 이번엔 그 벽을 넘지 못했다.
파란 도복을 입고 나온 허미미는 초반부터 업어치기를 시도하며 기회를 노렸다. 3분2초를 남기고 두 선수 모두 지도를 받았다. 허미미가 1분 56초를 남기고 지도를 한장 더 받았다.
결국 승부는 0-0으로 ‘골든 스코어’로 향했다. 연장 시작 1분48초 만에 소극적으로 나섰던 데구치가 지도를 받았다. 두 선수 모두 지도 2장을 받은 상황. 하지만 허미미는 2분 35초 만에 지도를 받아 반칙패를 당했다.
앞서 허미미는 부전승으로 32강을 통과했고 16강에선 팀나 넬슨 레비(이스라엘)에게 반칙승을 거뒀다. 8강에선 ‘천적’으로 꼽혔던 몽골의 엥흐릴렌 라그바토구에게 절반승을 거뒀다. 라그바토구는 허미미보다 세계랭킹은 낮아도 올림픽에 앞서 허미미에게 3전 전승을 거뒀던 선수. 허미미는 재작년과 작년 세계선수권 동메달 결정전에서 라그바토구에 번번이 패했고, 올해에도 아시아선수권 결승에서 만나 또 무릎을 꿇었는데 가장 큰 무대에서 멋지게 설욕했다. 허미미는 4강전에선 브라질의 하파엘라 시우바를 맞아 누르기 절반승으로 이겼다.
허미미는 2002년 한국 국적 아버지와 일본 국적 어머니 사이에서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일본에서 자랐지만 한국 국적을 유지한 유도 선수 출신 아버지를 따라 여섯 살 때 처음 도복을 입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전일본 중학유도선수권 정상에 오르며 일본 유도 기대주로 성장한 그는 2021년 한국행을 결심했다.
일본에서 한국인으로 쭉 살아온 할머니가 생전에 남긴 “손녀 미미가 한국 국가대표로 올림픽에 나갔으면 좋겠다”는 유언을 따른 것. 허미미는 경북체육회에 입단했고, 이듬해 2월 대표 선발전에서 당당히 태극문양을 달았다. 한동안 한국·일본 이중국적자였던 그는 작년 일본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인이 됐다. 여동생 허미오(20)도 경북체육회에서 현재 선수로 뛰고 있다.
허미미는 독립 운동가의 후손으로 유명하다. 일제강점기였던 1918년 경북 군위군에서 항일 격문을 붙여 일제 경찰에 체포돼 옥고를 치른 허석(1857~1920) 선생의 5대손이다. 징역 1년형을 선고 받은 허석 선생은 만기 출옥 후 사흘 만에 별세했고,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됐다.
허미미가 독립운동가의 5대손임을 밝혀낸 사람은 허미미를 한국에 데려온 김정훈 경북체육회 감독이다.
허미미가 태극기를 달고 국가대표로 뛰고 싶어 한국에 들어온 상황에서 관련 서류를 준비하다 허미미의 본적이 경북 군위인 것을 알게 됐다. 김정훈 감독은 “먼 친척이라도 살고 있지 않을까 싶어 주소지로 찾아가니 산골짜기에 집도 없는 폐허였다”며 “동네 어르신에게 물어보니 허씨 집안들이 살던 곳이고, 독립 운동가도 있었다고 알려주더라. 기념비도 있어서 확인을 해봐야 되겠다 싶어 면사무소부터 경북도청, 국가보훈부 등을 찾아다니며 자료를 샅샅이 뒤졌다”고 했다.
김정훈 감독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허미미가 허석 선생의 후손임이 증명됐다. 김 감독은 “허미미가 큰 용기를 내서 한국에 왔는데 일본 사람처럼 보는 시선이 있어서 확실히 한국인이란걸 각인시켜주기 위해 이 일에 더 매달렸다”고 했다.
도쿄 태생 재일교포 3세로 2020 도쿄 올림픽에서 태극 문양을 달고 동메달을 딴 안창림이 경북체육회 코치로 허미미를 지도하고 있다.
일본 귀화 제의를 뿌리치고 한국 유도 대표로 오랜 시간 활약했던 안창림 코치는 “내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한국 문화와 훈련 방식에 적응하기 위해 많은 시간이 필요했는데 허미미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금방 적응했다”며 “리우 올림픽 당시 세계랭킹 1위라는 오만한 마음을 가지고 대회에 임했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어 미미에게도 그런걸 알려주려고 했는데 미미는 그런 오만함 자체가 없더라”고 했다.
허미미는 한국 국가대표가 되고 나서 첫 국제대회였던 조지아 트빌리시 그랜드슬램 대회에서 세계적인 강호를 물리치며 금메달을 따내 한국 유도계를 놀라게 했다. 차근차근 성장한 그는 지난 5월 아부다비 세계선수권 여자 57kg급 결승전에서 올림픽 결승에서 맞붙은 데구치(캐나다)를 꺾고 정상에 올랐다. 한국 여자 유도가 세계선수권에서 29년 만에 거둔 쾌거였다.
그는 김미정 대표팀 감독과 함께하며 자신이 업그레이드됐다고 자평한다.
김미정은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72kg급에서 우승한 유도 레전드. 김미정 감독은 “기술이 좋은 일본 유도에 체력을 강조하는 한국 스타일이 더해지면서 기량이 더 좋아졌다”며 “뽑아 메치기가 주특기란 것을 상대 선수들이 잘 알고 있어 올림픽을 앞두고 반대쪽 앉아 메치기를 집중적으로 연마했다”고 말했다.
허미미는 문무를 겸비한 선수로, 현재 와세다 대학 스포츠과학부에 재학 중이다. 유도가 강한 학교들의 스카우트 제의를 뿌리치고 명문 와세다를 택했다. 한국에서 선수 생활을 하느라 온라인 강의를 들으며 학업을 이어가고 있다.
장민석기자 양승수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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