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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으스스한 직업, 법곤충학자
[과학기술인 기고] 법곤충학자가 구더기의 나이를 알아내는 방법
세상에서 가장 으스스한 직업은?
“…가 발견되었습니다. 도움을 요청해도 될까요?” 다급한 연락에 서둘러 출근 준비를 하며 바깥 날씨를 확인한다. 오늘 날씨는 따뜻한가? 서늘한가? 비가 왔었나? 습도는? 기상 정보를 꼼꼼하게 기록하고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대기 온도와 지면 온도 그리고 시체 표면의 온도를 측정한다. 시체 위 하얗게 보이는 작은 점들, 저것이 오늘 나의 목표이다. “앗, 죽으면 안 돼” 연약한 꼬물이들이 다치지 않도록 조심조심 알과 구더기, 번데기들을 채집한다. 오늘의 현장에도 다양한 곤충들이 몰려와 있다. 놓친 종이 없겠지? 다시 한번 꼼꼼하게 시체와 시체 주변을 둘러본 후 가방 가득 찬 채집통을 챙겨 실험실로 향한다.
실험실에 도착하자마자 보글보글 물을 끓인다. 아까부터 꼬르록 소리 내는 배를 채우기 위해 라면이라도 끓이는 것이면 좋겠지만, 지금 끓는 물에 넣는 것은 조금 전 채집해 온 파리 유충이다.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 너무 오래 넣어두면 안되고 살짝 데쳐야 한다. 끓는 물에서 파리 유충을 꺼낸 후 바로 에탄올 용액에 보관한다. 오늘 채집한 곤충은 약 300마리로 할 일이 산더미이다. 실험복을 입고 시체에서 잡아 온 구더기를 끓는 물에 데치는 모습은 공포 영화에나 나올 것 같은 소름 끼치는 모습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것이 나의 직업인걸. 이를 직업으로 하는 이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
세상에서 가장 으스스한 직업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한 나의 직업은 법곤충학자이다. 법곤충학자가 구더기를 뜨거운 물에 데치는 이유는 구더기의 나이를 알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구더기를 데치는 것과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고? 왜 구더기의 나이를 알아야 하냐고? 차근차근 알려주겠다.
구더기의 나이가 중요한 이유
오늘의 주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파리의 일생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곤충을 이용한 사후경과시간 추정에 파리의 역할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파리는 사망 직후 찾아와 주로 노출되어 있는 부위나 부드럽고 수분이 유지되는 부위를 골라 알을 낳는다. 파리의 종이나 지역 등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파리 알은 10~24시간 사이에 부화하고 부화한 유충(구더기)은 8~14일에 번데기가 된다. 번데기는 다시 8~16일 정도 지나면 비로소 파리가 된다. 중요한 부분은 파리가 반복적으로 알을 낳는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한 시체에서 나타나는 같은 파리 종의 유충 그러니까 아동 청소년 구더기들에게서 다양한 발생(성장) 단계를 볼 수 있다.
놀랍게도 곤충은 온도에 따라 일정하게 성장한다. 스스로 체온 조절이 불가능한 변온동물인 곤충은 주변 환경에서 성장에 필요한 힘을 얻는데 이는 파리도 마찬가지이다. 알에서 깨어나 자라나는 구더기의 성장 속도가 온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알, 구더기, 파리를 발견한 장소의 온도를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곤충이 성장하는 시간동안 쌓인 온도를 적산온도라고 한다. 우리가 너무 추운 날은 이불 밖으로 나가 활동하기 싫은 것처럼 곤충도 주변 온도가 특정 온도(기저온도)보다 낮을 때는 성장하지 않기 때문에 기저온도 값을 제외한 실질적으로 성장에 유효하게 사용된 온도를 유효적산온도라고 한다.
사건 현장의 온도를 기준으로 구더기가 알을 낳은 시점부터 가장 오래 산 구더기(파리)의 나이를 알아낸다면 사망 발생 시점부터 시체가 발견되기까지의 시간 즉 사망 이후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는지 ‘사후경과시간’을 알 수 있다. 사후경과시간을 분석해야 하는 이유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사망사건 즉, 변사 사건이 발생했을때 사망원인 및 범죄 관련 여부 파악에 중요한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구더기의 나이를 알아내는 법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파리 종별 유효적산온도를 통해 해당 구더기의 나이를 알아낼 수 있다. 문제는 지금부터이다. 유효적산온도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현장에서 발견한 알, 구더기, 번데기를 산 채로 잡아와서 정성 들여 키워야 한다. 애지중지 키우던 구더기가 죽어버리면 유효적산온도는 미궁에 빠져버리기 때문에 온도도 맞춰주고, 밥도 주고, 아기 구더기가 청소년 구더기, 청년 구더기가 되는데에 소요되는 시간, 성장 단계별 키(길이) 등을 꼼꼼하게 기록해야 한다. 구더기 육아일기라니… 정말 쉽지 않은 과정이다. 심지어 시체에서 주로 발견되는 파리 종에 따라 기저온도, 유효적산온도가 다르기 때문에 파리 종별, 온도별 육아일기가 필요하다.
다행히 현재는 법곤충학자들이 꼼꼼하게 작성한 육아일기를 통해 미리 알아낸 시기별 성장 단계를 활용할 수 있다. 현장에서 발견되어 채집해온 알, 구더기, 파리의 정보를 대입해 나이를 추정한다. 비슷해 보이는 알과 구더기의 종을 구분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데 현재는 파리 종 구분에 DNA 분석을 활용하고 있다.
파리 유충, 그러니까 구더기는 보통 세 단계를 거쳐서 성장한다. 구더기의 성장 단계는 하얗고 동그란 엉덩이(후기문)의 구멍수로 구분할 수 있다. 어린이 단계(1령)는 한 개의 구멍이, 청소년 단계(2령)는 두 개의 구멍이, 청년 단계(3령)는 세 개의 구멍이 있다. 구더기가 성장하면서 키도 쑥쑥 자라는데, 2mm 내외의 작은 어린이 구더기가 9~22mm의 어른 구더기가 되기도 한다. 구더기의 키를 잴 때 구더기가 움직이거나, 구부러진 자세로 있으면 정확한 키를 알 수 없다. 구더기를 죽이는 방법이나 보관하는 방법에 따라 키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현재는 구더기를 끓는 물에 살짝 데친 후 잘 펴서 에탄올 용액에 보관한 뒤 키를 재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다만 사람마다 키가 다르듯이 구더기마다 키가 다를 수 있어 성장 단계를 알기 위해 엉덩이를 확인하는 방법이 가장 정확하다.
곤충만이 할 수 있는 일
범죄 관련 소설, 영화, 예능 등에서 시체를 통해 범죄와 관련된 행위, 사실 등을 추적하는 요원들의 이야기를 자주 접할 수 있다. 다양한 기법들을 통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굳이 곤충의 힘이 필요할까?
부패가 심한 시신의 경우 체온 하강, 시신 얼룩, 시신 경직 등 시신 상태를 통해 계산되는 사후경과시간 추정을 위한 의학적 정보가 거의 모두 사라진다. 바로 이때 곤충이 활약한다. 거의 모든 시신에서 곤충이 발견되기때문에 법곤충학자는 곤충 종류와 성장 정도를 분석해 사망 시간을 역으로 계산할 수 있다. 시기마다 활동하는 곤충이 다르며, 곤충이 온도에 따라 일정하게 성장한다는 특성을 활용하여 사망 시점을 추정할 수 있는 것이다. 짧게는 몇 시간부터 길게는 몇 년 후까지 알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 곤충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서울아산병원 의료영상지능실현연구실 김지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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