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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화학자 탄생하려면 인간이 ‘문법’ 가르쳐 줘야
화학 연구 조연에서 주연으로 거듭난 계산화학
모르는 길을 찾아갈 땐 내비게이션부터 검색한다. 내비게이션이 없을 때는 지도를 썼다. 지도도 없을 때는 주먹구구로 찾아갔다. 원하는 물질을 생성하기 위한 화학 연구의 여정도 ‘길 찾기’처럼 발전했다. 수만 번의 실험을 반복하며 ‘우연한 발견’을 기다리던 때를 지나, 이론을 바탕으로 화학 반응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경우를 추려 실험을 진행하게 됐다. 그리고 현재의 화학은 ‘계산화학’이란 내비게이션을 쓴다. 지난 24일 기초과학연구원(IBS)과 한국과학기자협회가 공동 주최한 ‘과학미디어아카데미’의 연사로 선 백무현 IBS 분자활성 촉매반응 연구단 부연구단장은 화학 연구의 조연에서 주연으로 거듭난 계산화학이 걸어온 발자취를 소개했다.
입덧약 부작용이 보여준 계산화학의 필요성
1950년대 유럽에서는 ‘탈리도마이드(Thalidomide)’라는 약이 유행했다. 입덧 완화를 위한 약이었다. 하지만 당시 약물을 개발했던 화학자들도 예상하지 못했던 부작용이 있었다. 탈리도마이드의 화학 구조가 뒤틀리면(이성질성이 바뀌면) 혈관 생성을 억제하는 특성을 가진 물질로 변했다. 약물 부작용으로 인해 1만 명 이상의 기형아가 태어났다. 기대하지 않은 경로로 흘러간 화학 반응이 재난적 사건을 일으킨 것이다.
마침 이맘때쯤 분자들이 움직이는 방향을 예측하는, 즉 계산화학 분야의 시초 격인 연구가 등장했다. 원자들은 전자에 의해 서로 결합해 분자를 구성한다. 전자는 쉬지 않고 움직이는 데 이 궤도를 ‘궤도함수’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화학 반응은 궤도함수가 변하며 원자 간의 결합이 끊어지고, 새로운 결합이 생기며 새로운 분자가 형성되는 과정이다.
1950년대 후쿠이 겐이치 일본 교토대 교수는 가장 높은 에너지를 갖는 단 몇 개의 궤도함수가 화학 반응의 경로를 결정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비슷한 시기에 로알드 호프만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궤도함수의 에너지뿐만 아니라 대칭성이 화학 반응에 있어 결정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두 사람은 화학 반응의 예측 가능성을 획기적으로 향상한 공로로 1981년 노벨 화학상을 공동 수상한다.
백무현 부연구단장은 “컴퓨터의 성능이 부족한 과거에는 계산화학이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지만 컴퓨터의 성능이 획기적으로 개선되면서 화학 연구의 조연에서 주연으로 거듭나고 있다”며 “현재는 어느 정도까지는 계산화학으로 계산만 하고, 실제 실험은 생략하자고 할 정도로 정확성과 현실성이 다다랐다”고 말했다.
AI도 ‘편견 없는’ 화학 연구는 어려워
각종 과학 분야에서 인공지능(AI)을 접목한 연구를 시도하고 있지만, 화학 분야는 AI가 도전하기 어려운 분야 중 하나로 꼽힌다. AI가 학습해야 할 데이터가 매우 방대하기 때문이다. 백 부연구단장은 암 치료제인 ‘탁솔’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암 치료제인 ‘탁솔(Taxol)’에 분자의 특성을 조정하는 ‘작용기’를 달 수 있는 곳이 15곳이라고 가정해 보자. 교과서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주요 작용기 40개를 이 15곳에 달 수 있는 경우의 수만 계산해도 40의 15승이라는 어마어마한 숫자가 나온다. 이는 챗GPT가 학습한 데이터의 6조 배 수준이다.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시켜 ‘편견 없는’ AI를 만드는 것은 화학 분야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대신, 백 부연구단장은 AI에게 데이터가 아닌 화학 반응의 ‘문법’을 가르치는 것이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문장에 문법이 있다면, 화학 반응에는 전자의 움직임이라는 문법이 있다”며 “데이터가 크지 않아도 AI가 문법을 이해하게 만든다면 적은 데이터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권예슬 리포터
yskwon04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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