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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광복절] 안중근 의사

creamkj 2023. 8. 14.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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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안중근 의사

 

 

올해로 78주년을 맞은 광복절.

이날이 오기까지 많은 분이 독립운동에 자신을 희생하셨습니다.

오늘은 수많은 독립운동가 중, 안중근 의사에 관한 조금 더 깊은 이야기를 꺼내봅니다.

 

 

안중근 의사가 이뤄냈던 하얼빈 의거는 중국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중국의 지도자들은 한인의 기개를 높이 평가하면서 중국인의 분발을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손문, 원세개, 장개석, 양계초, 장병린, 진독수, 노신 등 많은 인물이 의거를 극찬해 마지않았습니다.

 

19091026일 하얼빈 의거로부터 1910326일 여순형무소에서 사형 집행으로 순국할 때까지 정확하게 5개월, 안 의사는 당당하게 심문과 공판에 임했습니다. 장병린(장태염)은 안 의사에 대해 아주 제일의협(亞洲 第一義俠)’’이라고 극찬하면서 체포되어 고문을 받았지만 쓸데없는 말이란 한마디도 없었고, 오히려 그 기백이 천하에 알려지니 지사들은 더욱 감동하고 격분하였다"라는 깊은 감회를 남겼습니다.

1910416더 그래픽에 소개된 찰스 모리머 기자의 이토 공작 살해범 재판 참관기는 재판에 임하는 안 의사의 진면목을 보여줍니다.

 

안중근은 달랐다. 기뻐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는 이미 순교자가 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준비 정도가 아니라 기꺼이, 아니 열렬히, 자신의 귀중한 삶을 포기하고 싶어 했다.

그는 마침내 영웅의 왕관을 손에 들고는 늠름하게 법정을 떠났다.”

 

안 의사는 굳은 신념과 고매한 인품으로 일본의 재판장, 검찰관, 변호사, 간수 등으로부터도 존경받았습니다. 형무소 직원들이 돈을 거둬 옷과 음식, 그리고 붓과 종이를 넣어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여순 고등법원장 히라이시 우지토는

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재판을 했지만 안중근처럼 강한 신념을 가진 사람을 본 적이 없다라고 하였고,

이토를 수행하다가 부상을 입은 남만주철도주식회사의 이사 다나카 세지로조차도

지금까지 만난 사람 중에서 가장 훌륭한 인물은 유감스럽게도 안중근이다라는 칭송의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안 의사를 지킨 간수들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헌병 지바 도시치는 안 의사의 위패를 사찰에 모시고, 휘호 위국헌신군인본분(爲國獻身軍人本分)’을 가보처럼 간직했다고 합니다.  휘호 언중신행독경만방기행(言忠信行篤敬蠻邦可行)’을 받은 경찰관 야기 마사노리 경부도 있었습니다. 두 휘호는 유족들에 의해 안중근의사숭모회로 돌아왔습니다.

 

하얼빈 의거와 안중근 의사의 순국은 일본의 지식인 사회에도 큰 충격을 주었던 모양입니다.

안중근 의사 순국(1910326) 직후인 19106월 메이지 천황의 암살을 기도한 이른바 대역사건(大逆事件)으로 고토쿠 슈스이를 포함하여 사회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들이 대거 체포되었지요. 체포 당시 슈스이의 품속에서 안중근 의사의 사진 위에 한시가 쓰인 엽서가 발견되었는데, “사생취의 살신성인 안군일거 천지개진(舍生取義 殺身成仁 安君一擧 天地皆振)”, 하얼빈 의거를 칭송하는 내용이었습니다. 하얼빈 의거가 연상되는 이시카와 타쿠보쿠의 코코아 한 잔’(1911)이라는 시도 있습니다.

 

- 나는 안다.() 말과 행동으로 나누기 어려운

단 하나의 그 마음을

빼앗긴 말 대신에

행동으로 말하려는 심정을

자신의 몸과 마음을 적에게 내던지는 심정을 -

 

역사학자 나카노 야스오는 안중근 의사를 영국의 토마스 모어보다 더 위대한 인물이라고 평했습니다.

토마스 모어에게는 ‘3S’, 즉 성인(Saint), 학자(Scholar), 정치가(Statesman)의 명예를 주어졌지만 안중근에게는 나라에 목숨을 바친 군인(Soldier)을 포함한 ‘4S’가 합당하다고 했지요. 아시아 대학교 교수를 지냈고, 하얼빈 의거와 관련된 죽은 자의 죄를 묻는다라는 저서를 남겼습니다.

철학자 마키노 에이지는 동양평화론과 칸트의 영구평화론을 비교하면서 안 의사의 평화사상을 극찬해 마지않았습니다. 호세이 대학교 교수로 일본칸트학회 회장을 지냈고, 몇 차례 한국을 방문하여 동양평화론에 대한 강연회를 가진 바 있습니다.

 

효창공원 의열사

현재 안중근 의사의 묘소는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의사와 함께 있지만 안타깝게도 안 의사의 묘는 가묘(假墓)입니다.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국권이 회복되면 고국으로 옮겨다오라는 유언을 남겼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효창공원 순국선열 묘역

나라를 위해 투쟁하셨던 분들의 마음과 희생을 뜻깊게 되새깁니다.  그들이 있기에 지금의 조국이 있습니다.

 

 

* 이 글은 초록색 옷을 입은 사람들의 본문을 인용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출처 - 유아이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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