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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나 난자 없이 만들어진 배아, 실험실에서 탄생하다 본문
[세계는 지금] 상당한 과학적 진전, 하지만 윤리적 후퇴?
이스라엘 연구진, 배아를 닮은 줄기세포를 이용하여 배아 모델을 성장시키다
지난 6월 중순,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막달레나 제르니카-고츠(Magdalena Zernicka-Goetz)가 인간 배아와 유사한 배아 모델을 만드는 데에 성공했으며, 이 모델은 14일 된 배아 단계와 유사함이 밝혀졌다. 배양 접시에서 배아를 키운다니… 마치 공상과학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다.
이어서 이스라엘 와이즈만 연구소 (Weizmann Institute of Science) 제이콥 한나(Jacob Hanna)가 이끄는 연구팀의 연구 결과가 네이처에 실리며 줄기세포 생물학자들의 열띤 경쟁이 시작되었다. 이 연구팀 역시 14일째의 배아 단계를 돌파하는 데 성공했으며 이들의 배아 모델은 실제 배아가 가질 수 있는 모든 구조를 갖추고 있어 “완전한” 배아로 성장할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뿐만 아니라 이 배아는 정자 또는 난자 세포 없이 인간배아줄기세포를 더 이전 단계 상태의 줄기세포로 되돌린 후 수작업으로 배양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과학계에서 이러한 연구 결과는 유전 질환에 대한 연구와 임신이 실패하는 이유 및 방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진전이지만, 윤리적 측면에서는 큰 지뢰밭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제르니카-고츠는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는 것이 연구의 목표는 아니라고 강조한다. 제르니카-고츠는 생물학자로서 배아 연구는 인간 발달 미지의 세계를 이해하고 이를 통해 유산, 유전적 질환, 선천성 장기 결함 등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한다.
생물학자들, 과연 신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것일까?
물론 우리는 인공 생명체의 가능성에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그녀의 연구를 비판하는 사람들 역시 연구 방식이 마치 신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 같다고 우려를 표한다. 이것이 바로 배아 연구의 딜레마이다.
문제는 배아에 대한 완전한 이해 등 과학적 목적을 위해서는 배아 모델이 실제와 가장 비슷해야 함은 자명하지만 이것이 원본에 가까워질수록 우리가 우려하고 있는 윤리적 문제에 더 가까워질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법학 교수이자 생명과학 분야의 윤리적, 법적, 사회적 문제에 대한 전문가 행크 그리리(Hank Greely) 역시 본질적으로 인간 배아와 너무 흡사한 모델은 지나치다고 주장한다.
이 모델은 배아라고 할 수 없다?
독일 막스 플랑크 분자 세포 생물학 및 유전학 연구소의 제시 벤블리트(Jesse Veenvliet)는 제이콥 한나가 이끄는 이스라엘 연구팀의 연구 결과를 보고 등골이 오싹해졌다고 한다. 발달 생물학자인 벤블리트는 지난 연구들을 통해 배아와 유사한 구조와 실제 배아를 바로 구분할 수 있지만, 이스라엘 연구팀의 결과는 실제 배아와 매우 흡사하게 생겼기 때문에 쉽게 구분할 수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많은 줄기세포 연구자와 마찬가지로 벤블리트 역시 이 모델들은 배아라고 할 수는 없다고 강조한다. 그는 2023년 6월 국제 줄기세포연구학회(ISSCR)에서도 “배아와 유사한 구조(embryo-like structures)“라는 용어를 더 선호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그리리는 아기를 만들 수 있다면 배아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정반대의 의견을 개진했다. 그는 과학자들이 배아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지만 이는 과학자들이 연구를 계속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수명이 짧은 합성 배아
하지만 벤블리트에 따르면 이 모델들과 인간 배아와는 분명히 다른 점이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서, 자궁 내막에 착상이 없기에 생명체가 될 수 없으며, 생명체는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사실 몇 년 사이 동물 배아를 이용하는 연구는 작은 진전이 있었다. 2023년 4월 초 중국 상하이 연구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원숭이의 줄기세포로 배반포(blastoid)를 만드는 데 성공했으며, 연구진들은 이 합성 배아를 성인 원숭이의 자궁에 넣었을 때 일부는 임신의 초기 징후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신과 유사한 반응은 단기간에 그치며 인공 생명체를 만드는 데에는 실패했다.
배아 줄기세포 연구의 14일 규정
법적으로나 과학적으로나 배아 연구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14일 규정” 때문이다. 이는 1984년에 발표된 영국의 인간 수정 및 배아학에 대한 조사 결과 ‘워녹 보고서(Warnock Report)’에 포함된 생명윤리 권고 사항을 기반으로 시작되었다. 중국, 영국, 캐나다를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인간 배아가 실험실에서 인공적으로 14일 이상 성장하는 것을 금지하기 때문이다. 반면, 프랑스와 브라질은 시간에 대한 제한이 없으며 독일, 터키, 러시아를 포함한 다른 국가에서는 이러한 실험이 완전히 금지되어 있다. 또한 미국은 주마다 제한이 다르다.
14일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수정 후 약 14일이 지나면, 단층 배아가 다층 구조로 변화하여 신체의 조직 및 여러 기관으로 분화하기 시작한다. 또한, 이 시기가 지나면 배아가 개별화되어 더 이상 쌍둥이가 될 수 없다. 즉, 온전한 개체가 될 수 있는 가장 시작 단계인 셈이다.
14일 규정이 있다고 하더라도 1980년대에는 인간 배아를 약 5일 이상 배양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위에서 소개한 최근 연구 결과와 같이 오늘날에는 배아와 매우 유사한 모델이 실제로 등장하고 있다. 물론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이러한 배아 모델들이 인간으로 자라지 않기 때문에 14일 규정이 필요 없다고 주장한다. 지난 2021년 국제 줄기세포연구학회에서도 여러 생물학자들은 14일 규정을 완화할 것을 제안한 바 있다.
‘내로남불’ 독일의 배아 보호법
앞선 설명처럼 독일에서는 배아 연구가 전면 금지되어 있다. 이는 1991년 제정된 배아 보호법에 따른 것인데, 이로 인해 독일의 과학자들은 해외에서 배아 줄기세포를 수입하여 연구에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독일에 인공수정을 시도한 사람들이 남긴 수천 개의 미사용 배아가 보관되어 있다는 점이다. 변호사 요헨 타우피츠(Jochen Taupitz)는 배아를 냉동 보관하거나 폐기하는 것 또는 보존하는 것은 허용되면서도 연구에 사용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 점이 명백한 이중 잣대(double standard)라고 주장한다.
타우피츠는 또한 누군가는 독일의 배아 연구 금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를 바라겠지만 이는 헌법재판소의 심사를 통해서만 가능하기에 여간 쉬운 문제가 아니라고 설명한다. 그는 이를 위한 유일한 방법은 누군가가 불법 연구를 통해서 법을 위반하며 문제 제기를 시작해야 하는데, 이러한 위험을 감수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김민재 리포터 minjae.gaspar.kim@gmail.com
[사이언스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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