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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자의 ‘유튜브’를 찍는 과학자들
눈도 깜빡하지 못할 순간에 벌어지는 현상 포착
오늘날 우리의 일상은 영상으로 기록된다. 밥을 먹고 옷을 입고 사회 활동을 하는 모든 행동의 기저에는 물질을 이루는 기본 단위, 원자가 있다. 그런데 세상의 근간인 원자들이 언제, 어떻게 움직이며 분자를 이루고, 세상을 만드는지를 영상으로 관측하기는 어려웠다. 눈도 깜빡하지 못할 찰나의 순간에 미세하게 움직이는 원자의 활동을 실시간 포착하는 기술이 없었기 때문이다.
분자가 탄생하는 모든 순간 기록
원자의 움직임을 추적하는 것은 화학반응의 상세한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즉 우리 세상을 기저부터 이해하기 위한 단서다. 그런데 원자는 수 펨토초(1000조 분의 1초)라는 찰나의 순간에 수 옹스트롬(1억 분의 1cm) 수준으로 미세하게 움직여 시간과 공간에 따른 변화를 관측하기 어려웠다.
첫 단추는 2005년 풀렸다. 이효철 기초과학연구원(IBS) 첨단 반응동역학 연구단장 연구팀이 2005년 분자 결합이 끊어지는 순간을 영상으로 포착하면서부터다. 당시 연구는 최고 권위의 국제학술지인 ‘사이언스(Science)’에 실렸다. 10년 뒤 연구진은 원자끼리 만나 분자를 이루는 화학결합의 순간, 즉 분자가 탄생하는 순간을 실시간 관측하고, 그 연구 결과를 ‘네이처(Nature)’에 게재했다. 화학반응의 시작과 끝을 알게 된 것이다.
반응의 시작과 끝인 반응물과 생성물은 구조를 유지하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길다. 반면 반응 과정의 전이 상태(transition state)의 경우 매우 짧은 시간 동안만 형성되기 때문에 관찰이 더 까다로웠다. 연구를 거듭한 끝에 2015년 연구진은 반응물, 생성물뿐만 아니라 변화의 전 과정을 시각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 연구 결과는 ‘네이처’에 게재됐다.
변화 과정을 모두 시각화할 수 있었던 것은 태양보다 100경 배나 강한 빛을 낼 수 있는 장치 덕분이었다. 연구진은 포항 4세대 방사광가속기의 엑스선 자유전자레이저(XFEL)를 연구에 활용했다. 연구에 사용된 금 삼합체는 금 원자 세 개로 이뤄진 화합물이다. 평소에는 흩어져 있던 세 원자에 빛(레이저)을 조이면 반응하여 화학적으로 결합하는 특징이 있다. 연구진은 펨토초 엑스선 펄스를 금 삼합체에 조사하여 특정 순간의 분자 구조를 알아냈다. 이렇게 얻어진 분자의 구조를 시간 순서로 나열하면 분자가 탄생하는 모든 순간이 기록된 영상이 완성된다.
분자 영상 촬영해 숨겨진 비밀도 밝힌다
더 나아가 지난 11일 연구진은 중성 상태의 분자가 아닌 이온 상태 분자의 탄생과 변화 과정을 영상으로 기록해냈다. 이 연구성과 역시 ‘네이처’에 실렸다.
이온은 실생활부터 우주 공간까지 도처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소금이 나트륨 이온과 염화 이온으로 분해되어 물에 녹으면 짠맛을 내고, 몸으로 흡수된 나트륨 이온과 염화 이온은 신경전달과 근육의 움직임을 조절한다. 태양에서는 기체상 이온의 집합인 플라스마를 통해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 지구에 빛과 에너지를 전달한다.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이온의 예는 리튬이온배터리다. 스마트폰, 노트북, 전기 자동차 등에 널리 사용되는 이 배터리는 리튬 이온이 양극과 음극 사이를 이동하면서 전기를 저장하고 방출하는 원리로 작동한다.
이처럼 이온은 우리 삶 전방위에 존재한다. 그럼에도 이온의 변화 과정과 구조적 특성을 파악하기는 어려웠다. 이온은 반응성이 높아 중성 상태의 분자보다도 더 포착이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주변 계와 고립된 기체 상태 이온의 동역학을 관찰한 사례는 지금까지 없었다.
이에 연구진은 앞선 연구보다 더 빠르고, 작은 움직임을 볼 수 있도록 고안된 새로운 장비를 활용해 이온의 순간순간을 기록한 영상을 제작했다. 이 과정에서 중성 상태의 분자와는 다른 이온의 독특한 거동도 포착했다. 양이온이 생성된 후 곧바로 상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구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암흑 상태(dark states)’에 머무르는 현상을 최초로 발견한 것이다.
연구를 이끈 이효철 단장은 “이번 연구는 흔하지만 밝혀지지 않았던 이온의 감춰진 비밀을 한 꺼풀 벗겨낸 것”이라며 “과학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아직도 우리가 모르는 그리고 과학자들이 풀어내야 할 물질세계의 경이로운 비밀은 많다”고 말했다.
권예슬 리포터
yskwon04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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